1. 복잡성의 비용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컴퍼니는 복잡성 비용에 주목하면서 복잡성 제거를 통해 매출과 영업이익률을 제고시킬 수 있다고 조언해 왔다. 베인앤컴퍼니가 미국 대기업 200곳을 조사했더니 복잡성 때문에 생기는 비용이 제품 원가의 10%에서 많게는 25%까지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배인앤컴퍼니의 대럴 릭비는 회사의 복잡성을 제품, 조직 그리고 프로세스의 3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제품/서비스의 복잡성이다.
대다수 기업들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다양해지면 소비자의 구매도 올라가고 만족도도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다양성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복잡성을 낳기도 한다.
네슬레의 킷캣 초콜릿이 그 사례이다. 이 제품은 네슬레를 통해 1989년 전세계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고, 1999년에는 물량이 부족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킷캣의 가능성을 확인한 네슬레는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기존 화이트초콜릿, 블랙초콜릿 2가지 종류를 레몬 요구르트, 티라미슈 등 25가지로 다양화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시장 점유율이 10% 이상 줄었고, 후발주자였던 마스(Mars)의 갤럭시 제품에 추월 당하는 결과가 발생했다. 이에 당황한 네슬레는 소비자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비자들이 새로운 제품들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네슬레는 늘어난 제품들을 관리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25가지 맛을 정확하게 알릴 수 있는 마케팅비용과 노력이 준비될 수 없었고, 상품 종류수만큼의 재고 부담도 늘어나는 등 복잡성의 비용이 증가했던 것이다.
이에 네슬레는 자신들의 역량으로 통제 가능한 제품 수를 다시 따져서 25가지의 제품을 4가지로 대폭 줄여 집중 관리했고, 그 결과 1년 후 반 토막 났던 매출을 원상태로 돌릴 수 있었다.
둘째, 조직 내부의 복잡성이다.
조직의 복잡성은 회사의 매출 증대, 사업 다각화, 글로벌 확장 등 회사의 유기적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그런데, 조직의 복잡성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할 경우 회사 내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여러 조직이 생길 수 있고, 이로 인한 관리비용의 증가, 중복투자, 업무집중도의 저하, 책임의 분산과 같은 문제점들이 발생할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인 A 회사의 경우 2000년대 초까지 여러 사업부별로 별도의 지원 부서를 두고, 인사, 행정, 고객대면 서비스 등에 이르기까지 별도의 업무를 처리하게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비효율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업부별로 중복되는 업무를 하는 인력들이 많았지만 이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없었고, 업무지원 기기 등 기자재도 중복해서 구매하거나,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단순 반복 업무들을 별도로 처리하는 바람에 시간을 낭비하거나 중요한 업무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A 회사는 사업부별로 별도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부분과 고객의 직접 응대가 필요한 서비스 등만 남기고 나머지는 업무를 통합해서 전체 사업부를 담당하는 경영지원사업부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경영 지원에 들어갔던 전체 비용이 30%나 줄어들었고, 전사적으로 일관된 경영지원 정책을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프로세스의 복잡성이다.
이는 조직 내부의 복잡성과도 연관이 있는데, 조직이 복잡하고 클수록 의사결정 프로세스도 신중하고 복잡하게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회사 내부의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복잡하면 너무 많은 의사결정자들이 참여하다 보니 시간이 지연되고 상호 간의 의견 조율이 안 되며, 심한 경우 전문 부서가 아니라 더 많은 권력을 가진 부서의 의견이 반영되는 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 때 휴대전화 업계에서 세계 1위였던 노키아(NOKIA)는 전사적 토론과정이라는 고유한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었다. 과거에는 이러한 프로세스가 노키아의 장점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제품 개발 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이를 인트라넷에 올리고 전 사원의 의견을 공유해서 향후 발생할 대부분의 오류를 잡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노키아가 세계 1위 업체로 성장하면서 직원수가 많아지며, 의사결정 기간이 최대 4~5개월까지 늘어나게 된 데 있었다. 사실 노키아는 스마트폰에 들어갈 모바일 운영체제인 심비안을 애플보다 더 일찍 개발해 냈지만, 심비안의 공개 여부에 대해 전사적 토론 과정을 거치다가 출시가 늦어지는 등 점점 빠르게 변화하는 휴대전화 시장의 속도 경쟁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뒤쳐진 것이다.
2. 복잡성의 필요성
이처럼 복잡성의 비용은 분명히 존재하며, 복잡성의 비용으로 인해 기업의 핵심역량이나 경영 효율성이 저해되는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항상 복잡성 비용의 통제와 제품, 조직, 프로세스의 간소화만을 추구해야 할까? 아니다. 모든 시기와 상황에 통용되는 정답은 없는 법이다. 다음과 같은 부분들도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먼저, 제품/서비스의 경우 기존 제품과 서비스로는 시장공략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는 보다 다양한 제품/서비스를 공급하려는 시도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공략을 위해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복잡성비용을 통제하기 위해 기존 제품들의 공급을 중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기호에 대응하기 위한 상품 다각화나 혁신 상품의 출시는 언제나 필요하고 환영할 일이다.
다음으로 조직 내부의 복잡성과 관련해서는 회사가 성장할수록 분업의 필요성도 커지고 회사내 조직 간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벤처의 경우 한팀 수준의 조직으로 전체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겠지만 회사가 커지면 분업을 통해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다. 즉, 조직의 복잡성과 분업의 효율성을 정확히 비교형량해서 분업의 효율성이 보다 큰 경우에는 조직을 분화시키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또한, 회사 내 조직 간에 건전한 비판과 균형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가령 신제품을 개발할 때 R&D부서는 최고 품질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비용을 무제한 사용하거나, 기술개발에만 몰입해서 수요량이나 마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견제하기 위해서 상품 기획 부서를 신설해서 시장 수요를 파악하거나 판매마진을 미리 조사해 보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컴플라이언스 조직, 감사나 법무 조직의 경우도 단기 효율성만 놓고 본다면 꼭 필요한 조직은 아니지만 회사 전체에 대한 건전한 비판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효율성 제고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프로세스의 복잡성의 경우 매우 어려운 의사결정을 할 때나 회사의 중요한 경영판단을 할 때는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집단지성의 정확성이나 효율성은 여러 논문을 통해 이미 입증된 바 있는데, 장래의 경기 예측이나 시장 상황, 그리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회사의 전략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회사 내외를 불문하고 특정한 전문가의 예측만으로는 정확한 답을 얻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회사 내의 다양한 조직의 대표들이 공동으로 토론한다면 전사적인 역량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회사 내 조직 간의 건전한 견제와 균형을 의사결정 프로세스에도 활용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복잡해 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의사결정의 오류를 줄임으로써 보다 효율적인 경영판단을 내리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3. 결론
최근들어 스타트업이나 IT회사의 애자일 조직을 배우자는논의가 활발하고,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구조조정이 활발해지는 등 복잡성 비용을 감축하기 위한 부분에만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복잡성의 필요성과 순기능도 분명히 존재하므로, 상품 혁신과 다각화/조직내부의 견제와 균형/신중한 의사결정 프로세스의 필요성 등에 대해서도 보다 심도 깊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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