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범죄 피의자 신상공개의 필요성
작년에 전 남편과 현재 남편의 아들을 살해한 고유정 사건에서 고유정의 신상이 공개되어 사회적인 충격을 일으킨 바 있었는데, 최근에는 N번방 사건으로 착취적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인 공분이 커지면서, N번방 사건의 공모자들의 신상과 얼굴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물론 이들 범죄자들의 신상과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 우리 대중들에게 즐거운 일은 아니겠지만, 중요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보다 일반화된다면, 체면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의 특성상 범죄 발생률을 줄이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범죄를 저지르면 나 뿐만 아니라 내 가족들도 사회적인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과, 이로 인해 기존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지역 사회를 떠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는 사회적인 경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익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들이 징역형을 마치고 나서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있으므로, 이들이 중요한 범죄를 저지른 사실과 이들의 잠재적인 위험성을 미리 사회에 알릴 필요성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서 장래의 범죄 피해자의 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이익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법원에서도 다음과 같이 판시하면서 신상공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공공의 정보에 관한 이익이 범죄 피의자의 명예, 장래의 사회활동의 불이익 등 사익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하므로 신상공개 필요성이 인정되며 공익을 충족시키기 위한 신상공개가 수사기관의 권한남용이라 볼 수 없다"
2. 신상공개 제도의 법적 근거
헌법 제37조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위 헌법 조문은 국민의 기본적 권리와 의무는 국회에서 제정되는 법률에 의하지 않고서는 제한될 수 없다는 근대 입헌주의의 기본원리의 하나인 법률 유보의 원칙을 말하고 있다.
본 포스팅에서 언급하는 신상공개의 경우에도 범죄 피의자의(범죄자도 국민이기는 하다) 기본권(인격권에서 파생하는 초상권, 명예권)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법률에 근거를 두어야 하며, 만일 법률의 근거가 없이 신상을 공개한다면 위헌적 행정행위로 판단될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는 과연 어떠한 조문을 근거로 피의자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고 있을까? 바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약칭: 특정강력범죄법)이 그 근거이다.
특정강력범죄법 제8조의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 ①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특정강력범죄사건의 피의자의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개정 2011. 9. 15.>
1.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2.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3.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
4.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
② 제1항에 따라 공개를 할 때에는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위 법률조항을 해석해보면, 기본적으로 1) 피의자의 범죄행위가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에 한정되고(일반적인 형법 위반행위는 공개 대상이 아님), 2) 법률상의 4가지 신상공개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에만 신상공개가 허용되므로 신상공개가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다. 또한, 3) 신상공개 요건이 매우 엄격함에도 불구하고 제2항에서 다시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공개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재량을 '남용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재량 남용 금지의무까지 기재하여 피의자의 인권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다. 4) 마지막으로 청소년의 경우에는 아예 신상공개가 불가능하다. 이처럼 신상공개 제도는 여전히 매우 소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에서 신상공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해 두고 있다. 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약칭: 성폭력처벌법) 상의 신상공개 제도가 그것이다. 최근 n번방 사건에서의 피의자 신상공개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성폭력처벌법 제25조(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 ①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성폭력범죄의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때에는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피의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다만,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공개하지 아니한다.
② 제1항에 따라 공개를 할 때에는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3. 현행법상 신상공개 제도의 보완점
첫째, 특정강력범죄법상 신상공개의 경우 특정강력범죄 사건의 피의자로 신상공개 대상이 한정될 수 밖에 없는데, 굳이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로까지 신상공개의 요건을 까다롭게 만들어서 중대 범죄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냥 단순하게 특정강력범죄 사건의 피의자로 규정하되, 국민의 알권리와 범죄 예방 가능성을 같이 고려해서 신상공개 여부를 판단하면 될 것이다. 위의 성폭력처벌법 상의 신상공개제도가 바로 위의 제안과 같이 규정되어 있는데, 성폭력범죄 못지 않게 중대한 특정강력범죄의 경우에도 위와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둘째, 특정강력범죄법상 신상공개 및 성폭력처벌법상의 신상공개 제도가 동일하게 법률상 필요조건을 모두 갖춘 경우에만(즉, and 요건) 신상공개를 허용하는 것도 지나치게 까다롭다.
단순하게 특정강력범죄 사건 또는 성폭력범죄의 피의자로서 국민의 알권리 보호, 재범의 예방 등 공익적 필요성이 있는 경우를 신상공개의 필요 요건으로 규정해두고, 피의자가 범행을 하였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는 경우에는 신상공개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단서조항을 마련해 두면 될 것이다.
어차피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면 형사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을 것이고, 신상공개 여부에 대해서도 가처분 신청을 통해 미리 법원에서 다투어 볼 수 있으므로, 충분한 증거가 없는 피의자에 대해 신상공개를 하는 실수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특정강력범죄법상 신상공개 및 성폭력처벌법상의 신상공개 제도가 동일하게 청소년에 대해서는 신상공개를 전면 금지하는 부분도 과도한 보호일 수 있다. 물론 청소년의 교화 가능성과 낙인 효과의 문제점을 고려할 때 청소년의 신상공개를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최근 청소년 범죄의 중대성과 잔혹성을 고려하면 청소년의 경우에도 보다 엄격한 요건을 두면서 신상공개를 허용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향후에는 청소년 신상 공개여부의 필요성에 대해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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